1983년 9월 3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미 35년이 흘렀지만 그 날은 잊혀지지 않는다. 내 나이 고작 열살… 딴에 그 극한의 슬픔을 알았는지, 집 마루에 누워 울다가 지쳐 어렴풋이 쳐다본 하늘은 더럽게도 푸르렀다. 장례가 끝난 후, 몇 달 동안 꿈에 엄마가 집에 돌아 올 정도로 그리웠다. 그렇게 잊혀졌던 나의 아픔과 기억을 소환하고 치유한 영화를 만났다.
얼마전 개봉했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배우 소지섭(정우진 역)과 손예진(임수아 역) 뿐만 아니라 엄마를 기다리는 아역 김지환 군(정지호 역)이 출연한 영화다. 이 영화는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죽은 엄마가 기억을 잃은 채 부자에게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면 이들은 다시 이별을 고하게 된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엄마 펭귄의 여행 오프닝
영화속 대부분의 이야기는 엄마 아빠의 첫사랑과 결혼, 출산 그리고 때 이른 이별에 이르는 필연적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내가 정말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극중 수아가 아들 지호에게 다시 떠나기 전에 이별 연습을 하던 장면이다. 아들이 엄마 없이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계란 후라이를 하는 방법, 빨래 말리는 방법, 청소하는 방법, 머리 감는 방법 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매년 아들의 성년이 될때까지 아들 생일을 위해 미리 축하 카드를 써서 전달하는 아빠 친구에게 부탁도 한다.
수아와 아들 지호와 이별하는 장면
과거 엄마와 갑작스런 이별을 했던 나에게 이 장면들 속에 있는 엄마와 아들의 교감과 과정에서 크게 힐링이 되었다. 엄마와 지호가 다시 이별하는 장면에서 ‘지호가 없는 세상에서는 백년을 살아도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구름 나라에 가서 지호를 계속 보고 있을께. 멋진 어른이 되야돼’라는 대사에서 너무 가슴뭉클했다. 천국에 계신 엄마가 보시기에 나도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 장면은 두고 두고 다시 볼 수 있게 휴대폰에 클립을 저장해 두었다. 돌아가신 엄마 생전 육성 녹음과 함께…)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과 경험에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절절한 연기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해주게 한 수아역의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멜로퀸이라는 수식어가 가능하게 했던 20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의 다양한 연기 변신을 거듭했지만 공감 연기가 빛을 발하는 그녀의 최근 작품에 매료되었다.
얼마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윤진아역을 맡은 손예진은 연하의 친구 동생인 서준희(정해인 분)과 달달한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 연애의 장벽과 가족의 반대, 사회적인 압박 등을 이겨나가는 30대 여성의 삶을 연기했다.
우연히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우리 부부도 연상연하 커플이다 보니 내가 실제 겪은 연애 과정에서의 고민과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이전에도 연상연하 커플일 다루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대부분 호기심과 케미에 집중했던 반면 이 드라마는 정말 일어나는 일이여서 공감할 수 있었다.
연상연하 커플의 경우 3살 차이라고 해도 사회 경력이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여자는 (집안의 반대, 연애 후 결혼까지의 과정, 이후 경제적 측면의) 위험 감수를 해야 하고, 남자는 그러한 여자를 안심시켜 주어야 하는 끈질기고 순애보적인 사랑이 있어야만 어느 정도 이뤄진다. 그래서, 내가 결혼했던 20년전에도 우리 나라 전체 결혼 커플의 4.5%만이 연상연하였다. (물론 최근에는 그 비율이 15%까지 늘었다고 한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사랑 고백 장면
극 중 둘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던 6회와 7회에서 준희가 전화로 ‘사랑해’라는 고백을 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진아. 그리고 그런 진아에게 ‘사랑한다는 데 왜 말이 없어?’라고 애타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준희의 아낌없이 쏟아내는 사랑에 결국 음성 녹음이지만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많이 배우고 있어. 준희야 사랑해 아주 많이, 아주 오래 오래 사랑할께’라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공감이 갔다. (우리 와이프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아꼈었다. 하하…)
그 이후에 극 전개가 좀 답답하고 캐릭터간의 감정들이 대치되는 면이 있었으나, 현실 연애에서 늘 있을 법한 배려와 오해가 교차하는 부분이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3년의 연애 끝에 부모님들이 허락을 해주어서 행복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딸이 나이가 차고, 아들이 그렇게 죽고 못사는데 자식이기는 장사는 없다. 극 중 진아와 준희도 서로를 못잊고 마지막에 제주도에서 다시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 아무리 속물 캐릭터 엄마도 그쯤되면 허락할 수 밖에 없을거다… 하하!
안판석 감독님 드라마 특성상 유독 롱테이크가 많고, 대사 하나하나가 실제로 나의 경험에 또 다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멜로 드라마다 보니,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처럼 드라마속 몇 가지 공감 장면은 클립을 만들어 OST와 함께 폰에 저장해뒀다.)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될 두 여자. 나의 어머니 그리고 와이프…
그녀들과의 아픈 기억, 잊지 못할 경험을 다시 꺼내고 힐링해 주었던 좋은 영화와 드라마였다. 아마 손예진 배우님을 만난다면 꼭 아래 사진에 싸인을 한번 받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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