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에서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숙사 생활이다.

10년만에 학생으로 되돌아와 처음 반긴 것도 바로 대학원생 기숙사. 집에서 떨어진 채로 서울에서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어색했던 기숙사방은 어느 새 익숙해져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우리 방은 두 명씩 쓰는 2인실이 세 개인 여섯명을 위한 아파트식 기숙사다.

의대 대학원과 암연구소에서 공부하는 그 친구들 사이에서 난 '큰 형님'으로 불리고 있다. 가끔 고기 파티도 하고 예비군 훈련도 함께가고, 일상과 장래 계획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나의 첫 기숙사 생활은 고교 3학년 때 시작되었다. 시골 출신으로서 중학교때 부터 형과 누나와 자취를 하던 나는 고3때 혼자 남게되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도시 출신인 아이들에게서 풍기는 묘한 문화적 차이점을 잊을 수 없다. 세상에는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그 이후 대학, 직장, 사회에서도 늘 그런 사람들을 만났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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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기숙사 방에서 (1994)

기숙사 생활의 가장 장점은 좁은 공간안에서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난 대학 1학년 때 부터 4년간 쭉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모든 추억이 기숙사와 연관되어 있다.

당시 나의 학부 및 대학원 지도 교수님이 기숙사 사감이였기 때문에 83학번 사감보로 부터 87, 89학번으로 이어지는 기숙사 내 학과 선배들의 존재는 나의 대학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와 의지를 키워 주었고 2학년 때 부터 랩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또래 집단이 아닌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방돌이였던 4학년(87학번) 선배는 1학년이던 나의 첫 입사날 새벽에 날 깨워 도서관에 함께 자리를 잡기도 했다. 88학번 카투사 출신 형들 사이에 끼어 공부도 하고 금성사가 주최한 무료 TOEIC 테스트를 하기도 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어느덧 나도 4학년이 되어 기계과 1학년생과 방돌이를 하게 됐다.  시험 기간 어느 날 이 친구가 밤새 끙끙 앓더니 아참에 화장실에서 배를 잡고 뒹구는 것이 아닌가. 선배와 애를 둘쳐 업고 병원 응급실에 가니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라는 것이다.

부모님 대신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해 주는 난생 첫 경험을 하기도 했다. 수 시간의 수술 끝에 나와 마취를 깨면서 부르르 떠는 그 친구의 모습이 아련하기만 하다.
 
대학원 시절 연구를 위해 머물렀던 한동대에서 만난 친구들도 잊을 수 없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 학교에는 개교한지 얼마 안돼 선배가 없었기 때문에 연구소에 소속된 학부 친구들은 우리를 많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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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GIS연구소 Fellow와 함께 (1998)

나도 연구소에 가면 학생들 기숙사에 잠을 자러 가는데, 대개 새벽이 휜해 올때까지 공부하고 이야기 하느라 밤을 샌 적이 허다했다. 개교 한지 얼마 안되는 시골 촌구석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함께 야식 먹으로 흥해읍내로 가는 일도 즐거운 기억이다.

첫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지냈던 사택 기숙사도 생각 난다. 벤처붐이 일었을 때 대부분 회사들이 지방 출신 프로그래머들을 위해 사택을 제공했었다. 부산에서 수업을 마치고 대전에 와서 함께 출근하고 먹고 자고 하던 친구들은 지금도 연락하는 사이다.

나의 이런 떠돌이 기숙사 생활은 99년에 와이프랑 결혼함으로서 마무리 되었지만 딱 10년만에 되돌아왔다. 지금은 늘 밥을 사주고 밤 늦게 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던 잊지 못할 83학번 선배 처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 1년 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남은 기숙사 생활을 좀 더 알차게 했음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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