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않기 위한 가이드

얼마전 한겨례 21의 쫄지마 실전 매뉴얼이라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민초들이 함부로 끌려가는 MB 시대, 소환에서 구속·기소까지 수사받는 법 Q&A 완전판이라는 부제가 담긴 이 기사는 꼭 공안 시국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데 꼭 숙지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구라도 인생사 한번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되고 검찰이나 경찰이라는 공권력 앞에 서게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검경의 수사 중에 목숨을 끊는 경우도 가끔 뉴스에 오른다. 자살의 원인이 검찰 조사가 아니었더라도 트리거(방아쇠)가 됐을 수 있는 것으로 심지어 변호사도 검찰 조사시 떨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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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회사가 90년대 후반 음반업계와 온라인 음악 사이트간 국내 최대 저작권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당시 법인과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나 또한 인생에서 마지막이 됐으면 하는 경험을 했다.

경찰서의 좁은 형사 책상 앞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거대한 서울지검에 들어서면 막막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이런 일에 맞딱드리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내심이다.

우선 시간을 자기네 마음대로 한다. 맘대로 오늘이고 내일이고 출두 요청을 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정작 들어가면 서너평 남짓 담배 꽁초가 즐비한 조사 대기실에 보내서 30분이고 한시간이고 기다린다.

일을 효율적으로 못하는 건 아닌것 같고,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전이다. 사람들의 시간을 빼먹으면서 피를 말려 어떻게든 빨리 끝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 수사관을 맞닥드리면 그는 피의자고 참고인이고 간에 일단 죄인 취급을 한다. “당신이 가만 있으면 왜 그쪽에서 고소를 하겠나?”하는 논리다. 사람을 흥분시키기 위해 자극하는 것이다. 아마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

딱딱한 사무실 환경, 포승에 묶인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조서를 받는 수사관 앞에서 침착하게 있는다는 게 보통 담력을 요구하는게 아니다. 신병 훈련소에 처음 갔을 때 첫주에 훈련병을 세게 굴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시간이 흘러 자존심을 깨 부스는 단계가 지나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의 정보가 어느 정도 확인 되면 타협을 시도한다. 대개 검찰이 기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때 너의 범죄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감형이 가능한지를 적당히 흘리면서 정보를 더 캐내게 된다.

미국에서는 ‘Plea Bargaining’이라 해서 유죄 협상제도가 존재하는데 우리 나라에는 그게 법제화 되어 있지 않아 대개 정보를 더 얻기 위한 수사 기법(?)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 실제로 BBK 사건 시 김경준에게 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했다고  기사화 되기도 했었다.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기소냐 아니냐가 최종 결정이 된다. 검사와 친구가 되느냐 원수가 되느냐는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사실 기소 여부와 관련 없이 이 때는 대개 검사와 친해져 있다. (기소를 하더라도 정식 재판에 회부되는 경우와 벌금만 매기는 약식 기소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끝까지 방심하면 안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수 개월간 조사를 받으면서 느낀 점은 대한민국 검사들 참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론의 주목을 받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에 각종 보고서, 법령, 산업 현황, 해외 사례 등을 열심히 공부하는 검사들도 많다. 


밤 중에 검사 요청으로 검찰청에 들어간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사무실에 불이 많이 켜진것이 꼭 벤처기업 빌딩이 연상 됐다.

검사님과 같이 피자도 시켜 먹으면서 옆 사무실의 당시 어떤 비리 수사를 하던 중수부 사람들은 일주일째 집에 안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끔 밤중에 서초동을 지나가다가 보면 그런 회상에 잠긴다.

결국 쫄지마 매뉴얼의 핵심은 스스로 떳떳하면 비굴해질 필요가 없고 당당하라는 것이다. 자존심 깍기, 죄인 취급, 회유와 협박 같은 각종 수사 기법에 현혹될 필요도 없고 그걸 인생사에 확대 해석할 필요도 없다. 수사관도 검사도 판사도 결국 사람이고 당당한 사람에게는 당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겪고 나야 안다는 것이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에게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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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생각 (6개)

  1. Tony.K 댓글:

    경찰서도 그렇지만 검찰 한번 가보면… 첨인 분은 당황스럽게 마련이지요… ^^;

  2. 궁금 댓글:

    그 때 검찰 겪으시고 난 결과는 어떠신거여요? 유죄 무죄? ㅎㅎ

  3. 정진호 댓글:

    석찬님의 이야기를 보니 자꾸 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 꿈틀….

  4. dawn17 댓글:

    재미있게 읽으며, ‘스스로 떳떳하라’는 말씀 새겨듣고 갑니다.

  5. White Rain 댓글: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실제로 겪으면 어떨지 아찔하기도 합니다.
    캥길 것이 없다면 굳이 주눅들 필요도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