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우주론에 대한 최신 현황을 설명해주고 있는 Sean M. Carroll의 Does Time Run Backward in Other Universes?라는 글을 스튜디오 판타지아님의 번역글을 통해 읽게 되었다. (이 블로그는 해외 정치, 경제, 과학 분야 주류 미디어의 주옥같은 칼럼과 글을 번역해 주시고 있으며,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우주론(Cosmology)을 매우 좋아해서 고교때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즐겨 읽었고, 대학때는 천문학과의 우주론 수업을 듣기도 했다. 우주론은 수학적 이론과 가설을 기존 물리 법칙과 천문학적 관찰 결과로 증명하거나 강입자가속기(LHC) 같은 대형 실험실로 규명해 보는 묘한 매력을 가진 학문이다. 즉, 우주의 기원과 미래에 대해 해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 과학 시스템 전체가 팀웍으로 매달려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것은 인류가 가진 아주 기본적인 호기심에 대한 물음이다.
시간의 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에는 우주론에서 풀리지 않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시간의 비가역성”이다. 시간의 화살이라고 일컫는 이 특징은 일단 계란 후라이를 만들면 다시 달걀로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자주 비유한다.
즉, 물리 법칙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관계 없는데도 왜 우리 우주에서 시간은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하는 점이다. Carroll은 시간이 되돌려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엔트로피(Entropy)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엔트로피는 왜 더운 물은 차가워 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열역학 2법칙에서 도입된 개념으로 닫힌계에서 엔트로피(무질서도)는 점점 커진다고 알려져 있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 않다. 저(低)엔트로피 상태보다 고(高)엔트로피 상태가 그 숫자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어떤 시스템에 변화를 주기만 하면 거의 매번, 변화 전보다 높은 엔트로피 상태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이것이 바로 우유가 커피와 섞이기는 하지만 절대 스스로 분리돼 나오지는 못하는 까닭이다. 물리학적으로 볼 때 우유 분자가 저절로 자기들끼리만 모일 수는 있다. 하지만 통계학적으로 보면,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극히 낮다. 우유 분자들이 일정한 패턴 없이 마구잡이로(random) 재배열을 할 때 저절로 자기들끼리만 모이기를 기다리겠다면, 현재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의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시간의 화살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연에 존재하는 수 많은 고 엔트로피 상태 중에서 특정한 하나의 고 엔트로피 상태로 시스템들이 진화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즉 시간이 되돌려 지지 않는 이유는 이전의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로 되돌아 가는(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엔트로피와 시간의 관계를 따져 보면 우주의 시작은 엔트로피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초기 조건을 가진다.
즉, 현대 우주론은 “우주에 존재하는 엔트로피가 어째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높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째서 오늘보다 어제가 더 낮았고, 어제보다 엊그제가 더 낮았느냐이다. “라는 우주 초기 조건의 문제에 답해야 한다.
우주는 텅빈 공간에서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우주론자들에게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이론’ 역시 우주가 급격한 팽창을 하기 전 보다 더 낮은 엔트로피 상태였던 초고밀도 암흑 에너지 공간이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균일한 상태인 현재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빅뱅 직후 우주 진화 초기 조건과 관계 없이 암흑 물질이 급격한 팽창 후 물질을 골고루 펴뜨렸다는 이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예 우주가 시공간이 시작되기 전 부터 고 엔트로피 상태인 텅빈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에 앞서 그는 텅빈 공간이 어떻게 고 엔트로피 상태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팽창하는 우주에서 중력이 관여했을 때 들어 설명하였다.
중력이 관여된 상태에서 현재 우주와 같이 암흑 물질을 가지고 팽창하는 경우, (엔트로피가 계속 커질 경우) 우주의 은하가 시야에서 사라져 블랙홀이 되 버리고 결국 블랙홀도 말라 버리는 가장 높은 엔트로피를 가진 텅빈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우주 속의 암흑물질이 존재해서 팽창을 계속 시킨다는 점은 천문학자들의 관측 결과 팽창 속도는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믿을만 한다. 즉, 암흑 물질을 가진 텅빈 공간은 우주의 마지막 미래이므로 그것이 우주의 초기 조건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그런 텅빈 공간에서 우주가 어떻게 다시 생길 수 있을까? 그는 더 이상 시간이 흐르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텅빈 공간에서 암흑 물질 내 양자 요동에 의해 다시 인플레이션 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우주가 인플레이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요동 침으로써 직접 뜨거운 빅뱅 상태로 돌진하는 것이다. 사실, 엔트로피만을 놓고 보면 이보다도 더욱 확률이 높은 것은, 우주가 지난 140억 년 동안의 진화를 전혀 거치지 않고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짜임새로 직접 요동쳐 변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겨 나는 ‘아기 우주들’ 중 일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반대 방향으로 시간이 흐를 수도 있음을 알아 냈다. 따라서 다중 우주론에서 아기 우주들은 시간에 대해 대칭적이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인 ‘저 엔트로피 상태의 우주 초기 조건’과 ‘시간의 비가역성’을 모두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론이 종교와 만나는 지점
그의 우주 모델은 우리가 가진 의문에 답을 해 주지만, 빅뱅의 부산물로서 성간 물질이 형성되는 우주로 나아가는 확률이 적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종교와 과학이 만나는 곳이다.
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의 우주론과 역사 모델을 가지고 있다. 현대 우주론은 모든 만물이 자연적 과정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Carroll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끝없이 열 탄생과 열사망을 반복할 수 있으며 다양한 우주가 생길 수 있다.
이는 불교의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론과 맟닿아 있는 반면 텅빈 공간에서 양자 요동에 의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로 만들어질 확률만 있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자의 관여는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큰 확률을 믿어 본다면 우주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간에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자들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다.
엔트로피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의문이 바로 생명체와 관련된 것이다. 생명체는 스스로 엔트로피를 낮출 수 있다. 물론 인간 역시 늙어서 죽기 때문에 우주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가 높아지지만, 세포 하나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 엔트로피 상태에 있다.
세포는 주위와 물질 교환을 하는 열린계이므로 열역학 제2법칙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하지만, 처음 생명이 생겼을 당시에는 어떻게 저 엔트로피 상태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똑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또한 자연주의적 발생론과 창조자에 의한 지적 설계론(Intelligence Design)의 모델이 맞서 있다.
분명한 점은 우주나 생명체나 모두 고도의 질서적인 저 엔트로피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적으로 가능했느냐 혹은 외부의 간섭이 있었느냐 모델은 종교적 사고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긴 시간이 주어졌을 때 확률적 가능성의 논의로 흘렀지만 지금은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져 매우 혼란 스러운 상태라 볼 수 있다.
아직도 과학적 가설이나 증거라는 것이 여러가지 종교적 혹은 무종교적 세계관을 통해 얼마든지 구미에 맞는 재해석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도 얼마나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우주와 지구 그리고 생명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단지 해변에서 놀고 있는 소년과 같다. 때로 자갈이나 더 예쁜 조개 껍질을 발견하고는 즐거워하는 소년이다. 그러나 반면에 거대한 진실의 바다는 내 앞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펼쳐져 있다. (아이작 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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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상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흑물질은 일반적 원자와 같이 우주 팽창의 척력으로 작용합니다.
우주 팽창을 가속시키는 것은 암흑에너지이죠.
그리고 다중우주론 중 막우주론을 설명하시것 같군요. 다중우주론에 신을 찾는다는 발상은 흔한 일이지만 현재 우주론학자 중 막역히 빅뱅이전의 상태를 설명을 못한다고 해서 종교를 찾는 경우는 없습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Carroll의 막우주론은 현대 우주론의 가장 최신 부류에 속한 것이라 소개하였습니다.
과학과 종교와의 접합점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신/무신론을 떠나 무종교도 일종의 종교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연을 보는 사람의 사고의 틀이 (종교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불교 윤회론과 기독교의 젊은 창조론 같은 두 극단의 모델도 현대 우주론에서 상통할 수 있지요.
아직도 현대 과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제들이 많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종교가 필요한 영역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적 설계론은.. 좀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