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3월 19일 소천하신 저의 장인 어른이신 故 박부웅 원로 장로님의 추모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1996년 7월. 지금의 와이프와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찾았던 무더운 여름날… “밥이나 많이 먹고 가라”고 하시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셨다.
故 박부웅 장로님은 고작 7살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보살핌도 잘 받지 못하신 채, 고교 시절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통해 매번 닥치는 인생의 난관들을 극복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10살때 어머니를 잃은 나에게 같은 연민을 느끼시고, 당시 직장도 없는 대학원생에 불과한 나와 귀하게 키운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셨다.
형제 자매도 많고 다들 집을 떠나 유학을 하면서 생활해서 가족간의 교제가 부재했던 우리집에 비해 2남 1녀의 처가는 늘 만남이 넘쳤다. 나로서는 어린 시절 쉽게 받지 못했던 생일 케이크도 매년 받고, 시골에 정착한 날을 기념일 삼아 가족들을 늘 불러모으시고 손주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런 어른이셨다. 가족간의 사랑이 늘 흐르는 안식처를 만드는 분이셨다.
1969년에 우리 장모님과 결혼하신 후, 온천중앙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으니 돌아가시기까지 만 50년을 한 교회를 주일학교 교사로, 교육부장으로 믿음의 인재들을 길러내시고, 91년 부터 장로로 교회를 섬기셨다. 1995년에 시골로 정착하시고도 20년이 넘는 기간을 매주 주일 성수를 하시면서, 주차 봉사로도 수고하시며 교인들의 귀감이 되셨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교인들이 추모 예배와 함께 장지까지 동행 해주실 정도로 존경을 받는 어른이셨다.
최근 1년간 몸이 점차 경직되는 힘든 와병중에 계시면서도 늘 유쾌함을 잃지 않으셨고, 가족들에게도 병을 이기는 용기를 보여주셨다. 연초에 지독한 폐렴을 앓으시고 난 후 잘 견디셨지만, 얼마전 다시 폐렴으로 입원하시고 일주일을 보내시다 새벽에 잠자듯이 편안하게 하나님 나라로 떠나셨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참 마음 아픈일이다. 오로지 남아 있는 사람이 감당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례가 끝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어제까지 있었던 분이 오늘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마치 꿈을 꾸고 깬 듯한 슬픔이 우리 장모님과 와이프에게도 찾아왔다.
하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거라는 소망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남은 이의 삶은 여전히 선물이고, 슬픔을 이겨내고 열심히 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장로님이 생전에 남겨주신 신앙의 유지(有志)를 이어가면서…
아버님, 그동안 열심히 사셨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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