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월가 시위에서 만난 해방구

이번 주에 콘퍼런스 참석차 뉴욕을 다녀왔다. 동부는 여러번 가 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은 처음이었다.

이 도시에 대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지만, 사실 첫 인상은 자본화된 커다란 도시 덩어리에 불과한데도 이것 저것 과도하게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침 도착한 날이 4대 국제 마라톤 대회의 하나인 뉴욕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종점인 센트럴파크에는 수 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수 만명의 사람들을 응원하는 또 다른 수만 명을 보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어도 그 에너지가 몸으로 팍팍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성공을 위해 모여드는 이민의 나라의 마라톤답게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여기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붐비는지 횡단 보도 신호를 지키다간 치일 수 있어서 무단 횡단이 자유롭고 대낮같이 밝은 타임스 스퀘어와 늦게까지 노점에서 음식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꽤 이채롭다고 할까.

사실 뉴욕이라고 하면 911 참사가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와 전 세계 부의 상징은 월 스트릿으로 대별된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 사이를 지나면서 나는 매우 익숙한 뉴스 속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는 99%라는 반월가 시위가 그것이다.

쉼터로 만든 블럭 하나를 완전히 점령한 노숙 캠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에는 간단한 인포 부스가 있고, 캠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음식을 나눠주는 공간, 취재를 위한 공간 등이 다양하게 있었다.

실제로 서너개의 취재진들이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그냥 부패 자본에 맞선 반월가 시위라기 보다는 마치 세상의 모든 자유를 모아두고 있는 곳 처럼 느껴졌다.

티벳 문제, 인디안 문제, 양성 평등 문제를 다루는 많은 간이 부스가 있고 심지어는 담배 피울 자유를 달라는 이색 부스도 있었다.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토론을 하고, 소리를 질러 자기 주장을 해대는 이 공간은 월스트리트에서 두 세 블럭이 떨어진 고작 한 공간에 불과했지만, 가장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의 심장에 있는 ‘하나의 해방구’처럼 느껴졌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 해방구는 자본 사회가 가진 넘치는 여유의 단적인 실례인 것도 같았다. 사실 뉴요커들에게는 별로 큰 관심 없는 대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공간 역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에너지의 그냥 한 표상 처럼 보였다.

어쨌든 월스트릿도 영향은 받고 있었다. 뉴욕 증권 거래소 앞 도로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경찰들이 계속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눈 속의 뉴욕은 인간이 쌓은 또 하나의 바벨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모아 놓고 독점해서는 안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여느 사람들 처럼 뉴욕을 그리워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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